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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국가정보국 여론조작 사건
Ruina National Intelligence Agency Opinion Manipulation Scandal
Дело о манипулировании общественным мнением НРА Руины
파일:02시 14분 게시물.png
「오리종」 토론광장에 9분간 게시되었던 과제 카드 12-1187의 캡처본
공작 기간
2011년 3월 7일 ~ 2012년 11월 3일
발각
2012년 10월 9일 02시 14분
장소
루이나 나보레 시, 벨포르 특별시 외
유형
정보기관의 국내 여론조작·선거 개입
관련 선거
2012년 루이나 대통령 선거
당시 대통령
리처드 엘스워스 (사회민주당)
관련 기관
• 국가정보국 정보환경대응실
• 해군정보부 제5처
• 광역수사국 수도권 지역본부
• 외곽 협력망 31개 팀
운용 계정
약 2,920개
게시물
약 83만 건 (추정)
기소
35명 (유죄 27명)
결과
국가정보국장 징역 5년 확정
국가정보국법 개정 (2018)
정보기관은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날씨를 바꿀 뿐이다.

빅토르 A. 셰르바코프 전 국가정보국 작전본부 부국장, 2019년 1월 벨포르 지방법원 피고인 신문에서
오늘 나는 내 복무기간을 늘려 달라는 글을 스물세 개 썼다.

나탈리아 V. 오를로바의 복무 일기, 2012년 6월 14일자

1. 개요2. 명칭3. 배경
3.1. 정보환경대응실3.2. 국외성의 해석3.3. 엘스워스 정부와 정보기관3.4. 2012년 대통령 선거
4. 공작의 구조
4.1. 조직4.2. 과제 카드 체계4.3. 계정과 발신 기반4.4. 외곽 협력망4.5. 해군정보부 제5처4.6. 주요 논지4.7. 규모
5. 경과
5.1. 시범 운용 (2010~2011)5.2. 대선 국면 (2012년 3월~11월)5.3. 02시 14분 게시물5.4. 보도와 고발5.5. 벨포르 시경찰의 수사5.6. 광역수사국 이관5.7. 11월 1일 발표5.8. 선거
6. 수사
6.1. 특별수사단 (2012년 11월~2013년 8월)6.2. 마레샬 증언6.3. 협력자와 압수수색6.4. 국장의 사임과 1차 기소6.5. 해군정보부 가담의 발각6.6. 선거무효소송 기각6.7. 콜턴 정부 출범과 수사 축소6.8. 17-3호 작전으로의 연속6.9. 재수사 (2017~2019)
7. 재판
7.1. 해스컬 재판7.2. 셰르바코프 재판7.3. 광역수사국 관계자 재판7.4. 해군정보부 관계자 재판7.5. 외곽 협력망 재판7.6. 판결 요약
8. 캠프는 알고 있었는가
8.1. 네 차례의 만남8.2. 정세분석 문건 12건8.3. 22시 51분 문자메시지8.4. 반론과 결론
9. 피해 사례
9.1. 「적색청소부」와 아홉 살 아이9.2. 도용된 얼굴9.3. 숙제를 거부한 징집병9.4. 이주민 재단9.5. 포스터 속 가족9.6. 피해 구제
10. 반응
10.1. 정치권10.2. 국가정보국 내부10.3. 대학가와 시민사회10.4. 사비에트의 반응10.5. 제보자에 대한 공격
11. 영향
11.1. 국가정보국법 개정 (2018)11.2. 관할 규정 폐지11.3. 공직선거법 개정 (2019)11.4. 아동 대상 모욕의 공소시효 특례 (2019)11.5. 포털의 대응11.6. 정치적 영향
12. 평가와 논점
12.1.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가12.2. 「국외」는 어디인가12.3. 신분보장의 역설12.4. 조직의 결정
13. 연표14. 주요 인물15. 여담16. 대중매체에서17.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국가정보국(NIA) 작전본부 산하 정보환경대응실이 국외 선전 대응 업무의 형식을 빌려 국내 인터넷 여론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 리처드 엘스워스의 재선을 저지하는 방향으로 공작을 벌인 사건. 해군정보부 제5처와 민간 외곽 협력망이 공작에 가담했고, 선거 사흘 전에는 광역수사국(MIA)이 수사 범위를 좁힌 채 "선거와 관련한 게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은 대개 집권 세력이 정보기관을 동원한 사건으로 이해되지만, 이 사건은 그 구도가 정반대였다는 점에서 루이나 정치사에서도 특이한 사례로 꼽힌다. 당시 대통령 엘스워스는 사회민주당 소속이었고, 재선 공약으로 정보환경대응실 폐지와 국장 신분보장 축소를 내걸고 있었다. 공작의 표적은 정부 자신이었고, 수혜자는 야당인 민주공화당의 리처드 콜턴 후보였다. 콜턴은 1.5%p 차로 당선되었다. 공작은 정부 정책만 겨누지 않았다. 과제 카드와 일일 보고에는 집회에 나온 아홉 살 아이, 사진을 도용당한 퇴역 군인, 정부 홍보물에 나온 임대주택 입주자처럼 실명과 얼굴로 특정된 개인 1,106명이 등장한다.

선거 뒤 퇴임까지 약 10개월 동안은 엘스워스 정부가 수사를 주도해 국장 마틴 R. 해스컬을 기소했다. 그러나 2013년 9월 콜턴 정부가 출범하면서 수사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특별수사단장이 직무에서 배제되었고, 검찰총장이 사임했으며, 정보환경대응실은 이름을 바꿔 존속했다. 이 조직은 2015년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 유족 농성을 겨냥한 17-3호 작전을 수행했고, 그 자금 경로는 이후 코발 게이트로 드러났다. 사건의 전모는 2017년 정권 교체 뒤 구성된 정보활동 재검증 위원회가 원격지 백업 테이프에서 과제 원장을 복원하면서 비로소 밝혀졌다. 해스컬은 2019년 징역 5년이 확정되었고, 기소된 35명 중 27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사건은 루이나 정보기관 감독 제도의 약점 두 가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하나는 국가정보국법이 금지한 「국내 활동」의 기준을 국가정보국 스스로 해석해 왔다는 점이다. 국가정보국은 2004년 내부 의견서에서 활동의 국외성을 계정 등록지와 서버 소재지로 판단한다고 정해 두었고, 모든 계정을 콘스탄티노폴 통신망에 등록함으로써 서류상 국외 활동의 외형을 갖추었다. 다른 하나는 1981년 정보기관 조사위원회 권고로 도입된 국장 신분보장이다. 이 제도는 대통령이 정보기관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만든 장치였으나, 이 사건에서는 정보기관이 대통령에 맞서는 방패로 쓰였다.

국가정보국법 (2012년 당시)

제3조(직무) ① 국가정보국은 다음 각 호의 직무를 수행한다.

1. 국외 정보의 수집·분석·배포

2. 대통령의 서면 승인을 받은 국외 비밀공작

3. 국외 정보환경에 대한 대응

제9조(국내 활동의 금지) ① 국가정보국은 루이나 국내에서 정보의 수집, 공작, 그 밖의 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국외 정보 활동에 부수하는 경우로서 정보활동감독법이 정하는 절차를 거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17조(국장의 임기와 신분보장) ① 국장의 임기는 5년으로 한다.

② 대통령은 국장에게 직무상 중대한 위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상원의 동의를 얻어 국장을 해임할 수 있다.

제21조(정치 관여의 금지) ① 국장과 직원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2. 명칭 [편집]

사건 초기인 2012년 10월에는 발단이 된 게시물의 게시 시각을 따 「02시 14분 게시물 사건」으로 불렸다. 게시물이 국가정보국 내부 문서의 형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에는 진보 일간지 《라 부아》가 「번역 과제 사건」이라는 이름을 썼고, 보수 일간지 《르 나시오날》은 2013년 초까지 「NIA 직원 게시물 논란」이라는 표현을 유지하며 개인의 일탈이라는 해석에 무게를 두었다.

2013년 7월 해군정보부의 가담이 드러나면서 특정 기관의 이름을 뺀 「정보기관 선거 개입 사건」이 널리 쓰였고, 광역수사국의 발표에 초점을 맞춘 「11월 1일 발표 사건」이라는 표현도 함께 쓰였다. 2017년 정보활동 재검증 위원회가 채택한 공식 명칭은 「2011~2012년 정보환경대응 활동의 국내 전용에 관한 사안」이며, 재판 기록상 사건명은 「피고인 해스컬 외 12인에 대한 국가정보국법위반 등 사건」이다.

「국가정보국 여론조작 사건」은 2017년 재수사 이후 언론과 교과서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명칭이다. 다만 공작의 주체가 국가정보국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명칭이 사건의 범위를 좁힌다는 지적도 있다.

3. 배경 [편집]

3.1. 정보환경대응실 [편집]

정보환경대응실은 1998년 4월 1일 국가정보국 작전본부 산하에 22명 규모로 설치되었다. 1990년대 중반 사비에트가 루이나를 겨냥한 대외방송을 확대하고 루이나어·러시아어 방송 시간을 두 배 가까이 늘리자, 이를 감시하고 루이나 대외방송에 쓸 반박 원고를 작성하는 것이 설치 목적이었다. 「정보환경」이라는 용어는 원래 해군 교리에서 쓰던 말로, 설치 당시 해군정보부 출신 인력 7명이 초기 요원으로 옮겨 왔다. 두 기관이 이후 공작에서 쉽게 손을 잡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 인적 연원이 거론된다.

2000년대 초 루이나에서 포털과 온라인 토론장이 대중화되고 사비에트 측으로 의심되는 계정이 루이나 포털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정보환경대응실의 업무 중심도 방송에서 인터넷으로 옮겨 갔다. 인원은 2008년 52명으로 늘었다. 이 무렵까지 대응실의 온라인 활동은 사비에트 측 게시물을 수집·번역해 분석 보고서를 쓰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직접 게시는 예외적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3.2. 국외성의 해석 [편집]

국가정보국법 제9조는 국내 활동을 금지하지만, 무엇이 국내 활동인지는 정하지 않았다. 2004년 6월 국가정보국 법무관실은 "루이나 포털에 게시된 국외 발신 선전물에 대응하는 것이 국내 활동에 해당하는가"라는 작전본부의 질의에 의견서 제04-17호로 답했다. 의견서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법무관실 의견서 제04-17호 (2004년 6월, 발췌)

국외 정보환경 대응 활동의 국외성은 대응 발신의 기반, 즉 계정의 등록지와 발신 서버의 소재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다만, 대응의 대상은 국외에서 발신된 게시물이어야 한다.


이 의견서는 내부 법령 해석이라는 이유로 의회 정보위원회에 보고되지 않았다. 의견서가 붙인 단서, 즉 대응 대상이 국외 발신 게시물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2010년 12월 실무 지침 개정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개정 지침은 대응 대상에 "국외 선전과 논지가 일치하는 국내 게시물"을 추가했는데, 이른바 「논지 일치」 기준이다. 사비에트 대외방송이 루이나 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에 논평을 내던 상황에서, 이 기준은 사실상 루이나 국내의 모든 정치적 게시물을 대응 대상으로 만들었다. 재검증 위원회는 2018년 보고서에서 이 개정을 "공작의 법적 기초가 완성된 시점"으로 지목했다.

3.3. 엘스워스 정부와 정보기관 [편집]

엘스워스는 2009년 9월 1일 취임했다. 그의 정부가 추진한 정책 가운데 정보기관과 직접 부딪친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군정 과거사 진상규명 특별법이다. 2011년 제정된 이 법은 1978~1980년 군정기 기록을 보유한 모든 기관에 2013년 12월 31일까지 해당 기록을 진상규명위원회로 이관할 의무를 부과했다. 군정기에 국내 사찰에 전용된 전력이 있는 국가정보국, 그리고 전신인 법무부 광역범죄조사과가 1978년 군사경찰사령부에 흡수된 광역수사국이 이관 대상 기록을 가장 많이 가진 기관이었다.

둘째는 2011년 시작된 사비에트와의 랜드해협 긴장완화 회담이다. 회담 의제에는 해협 내 해군 전개 규모의 상호 제한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루이나 군 내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해군과 해군정보부의 반발을 샀다.

셋째는 정보기관 개혁 공약이다. 엘스워스는 2012년 2월 20일 재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정보기관 개혁 3원칙」을 내놓았다. 정보환경대응실을 폐지하고 대외방송 원고 업무는 대외방송청으로 이관할 것, 국장 신분보장 조항을 개정할 것, 과거사 기록을 기한 안에 예외 없이 이관할 것이 그 내용이었다. 정보환경대응실로서는 조직의 존폐가 선거 결과에 걸리게 된 셈이다.

국장 해스컬은 2008년 7월 1일 전임 대통령 존 F. 페어팩스가 임명한 인물로, 임기는 2013년 6월 30일까지였다. 엘스워스는 취임 직후 국장 교체를 검토했으나,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해 온 자신의 입장과 신분보장 원칙을 고려해 유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2011년 해협 회담 준비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국가정보국장을 사전 브리핑에서 제외하면서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

3.4. 2012년 대통령 선거 [편집]

2012년 대통령 선거는 현직 엘스워스와 민주공화당 후보 콜턴의 양자 구도로 치러졌다. 주요 쟁점은 해협 회담, 병역 복무기간을 21개월에서 18개월로 줄이고 대체복무를 넓히는 병역 개편안, 공공임대주택 예산 확대, 과거사 청산이었다. 콜턴 측은 해협 회담과 병역 개편을 묶어 "안보 공백"이라는 구호로 공세를 폈다.

여론조사에서 엘스워스는 2012년 여름까지 4~6%p 앞섰으나, 10월 들어 격차가 오차범위 안으로 좁혀졌다. 선거는 11월 4일 일요일에 치러졌고, 투표율 74.2%에 콜턴 49.6%, 엘스워스 48.1%, 기타 후보 2.3%로 콜턴이 약 77만 표 차로 당선되었다. 엘스워스는 루이나 역사상 세 번째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다.

4. 공작의 구조 [편집]

4.1. 조직 [편집]

2012년 11월 기준 정보환경대응실의 인원은 164명(정규직 118명, 계약직 46명)이었다. 대응실은 실장 아래 네 개 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부서
인원
업무
실장실
10명
총괄·보고
관측반
31명
탐지·일일 보고
기획반
14명
과제 카드 작성
전파반
97명
계정 운용·게시
협력관리반
12명
외곽 협력망 관리

전파반은 3교대로 운영되었고 야간조는 22명이었다. 주간조는 나보레 본청 별관에서, 야간조는 나보레 시내에 임차한 아파트 세 곳에서 근무했다. 대응실 내부에서 「분산 작업장」으로 불린 이 아파트들은 국가정보국 지원본부와 시설관리 위탁 계약을 맺은 민간 업체 「레스트랑 시설관리」 명의로 임차되어 있었다. 본청 망을 쓰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사건을 드러낸 것도 이 분산 작업장이었다.

4.2. 과제 카드 체계 [편집]

대응실은 2011년 3월 7일 과제번호 11-0001을 시작으로 「번역 과제」라는 업무 체계를 도입했다. 대응실의 공식 업무가 사비에트 선전물의 번역과 반박 원고 작성이었기 때문에, 국내 게시 지시도 번역 과제의 형식을 띠었다. 과제 원장에 국내 게시물은 「대응 원고의 국외 게시」로 기록되었고, 내부 보고에서 게시 건수는 「번역 실적」으로 불렸다.

하루 업무는 다음 순서로 진행되었다. 05시 30분 관측반 야간조가 밤사이 사비에트 대외방송과 「논지 일치」 게시물을 모아 07시 30분 「정보환경 일일 보고」를 실장과 작전본부 부국장에게 올렸다. 08시 30분 부국장실이 「일일 대응 방향」을 내려보내면, 09시 30분 기획반이 그날의 과제 카드를 발행했다. 전파반은 카드를 받아 하루 동안 게시했고, 18시에 실적이 집계되어 주 단위로 「도달 지수」가 산출되었다. 도달 지수는 게시물의 조회·공유·반응 수를 가중 합산한 값으로, 전파반 요원의 근무평정에 반영되었다.

과제 카드에는 과제번호, 원문(대응 대상이 된 사비에트 측 방송이나 게시물의 요지), 대응 방향, 강조 표현, 길이별 대응문 예시 세 가지, 게시 채널, 기한이 적혔다. 2011년에 1,690건, 2012년 11월 3일까지 1,352건, 모두 3,042건이 발행되었다. 하루 평균 4~5건꼴이다.

과제 카드의 원문 칸은 공작이 서류상 국외 대응이었음을 보여 주는 유일한 근거였다. 그러나 재검증 위원회가 복원한 카드를 분석한 결과, 원문 칸이 「원문 없음(선제 대응)」으로 비어 있는 카드의 비율은 2011년 17%에서 2012년 44%로 늘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국외 선전과의 연결은 형식으로만 남았던 것이다.

4.3. 계정과 발신 기반 [편집]

대응실이 직접 운용한 계정은 약 1,340개였다. 계정은 모두 콘스탄티노폴 통신 사업자가 발급한 휴대전화 번호로 등록되었다. 명목상 루이나 보호령이지만 실질적으로 무정부 지대인 콘스탄티노폴에서는 가입자 신원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응실은 나보레의 중개업자를 통해 번호를 대량으로 사들였다.

게시는 대응실이 자체 개발한 게시 도구를 거쳤다. 내부에서 「우편함」으로 불린 이 도구는 콘스탄티노폴 현지 호스팅 업체에서 임차한 중계 서버를 경유해 게시물을 올렸다. 계정의 등록지와 발신 서버가 모두 국외에 있었으므로, 의견서 제04-17호의 기준에 따르면 서류상 모든 활동이 국외 활동이었다.

계정마다 「인물 설정서」가 붙었다. 설정서에는 나이, 직업, 거주 도시, 말투, 금지 표현이 적혀 있었고, 인물 유형은 퇴역 군인, 자영업자, 대학생, 주부, 이주민 2세의 다섯 가지였다. 이주민 2세 유형은 사비에트를 떠나온 러시아어권 가정의 자녀로 설정되어, 사비에트를 경험한 사람의 목소리로 정부 정책을 비판하도록 짜여 있었다. 전파반 요원 한 명이 관리한 계정은 8~15개였다.

4.4. 외곽 협력망 [편집]

협력관리반은 민간 단체와 개인으로 이루어진 외곽 협력망 31개 팀, 약 390명을 관리했다. 가장 큰 팀은 「해군 전우연합회」 청년부(62명)였고, 「루이나 안보시민포럼」, 대학 토론 동아리 두 곳, 종교계 청년 단체 한 곳 등이 포함되었다. 협력망이 운용한 계정은 약 1,120개로 추산된다.

협력망 팀원 대부분은 배후에 국가정보국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과제 카드는 「주간 안보 이슈 브리핑」이라는 이름의 이메일 소식지로 가공되어 팀장들에게 전달되었고, 팀장만이 자금의 출처를 알았다. 활동비는 국가정보국 예산 중 「국외 협조자 사례비」 항목에서 현금으로 지급되었는데, 국외 정보원에게 주는 돈으로 편성된 예산이 국내 단체로 흘러간 것이다. 2010~2012년 협력망에 지급된 활동비는 약 620만 달러이며, 그중 410만 달러가 2012년에 집중되었다.

4.5. 해군정보부 제5처 [편집]

해군정보부 제5처(대외심리전처)는 사비에트를 겨냥한 방송·전단·해상 심리전을 맡는 부서였다. 2011년 9월 해군정보부와 국가정보국은 「해협 정보환경 공동대응 약정」을 맺었다. 해협 회담을 앞두고 사비에트 해군의 선전 공세에 공동 대응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제5처는 오보레 해군기지에서 「번역·방송 특기」로 분류된 징집병 212명(남성 129명, 여성 83명)과 장교·부사관 31명을 공작에 투입했다. 징집병들은 일과 후 「번역 실습」 시간에 대응실이 보낸 과제 카드로 게시물을 작성했고, 이들이 운용한 계정은 약 460개였다. 제5처의 게시물은 병역 개편안과 해협 회담에 집중되었다. 복무기간 단축의 직접적 수혜자인 징집병들이 복무기간 단축에 반대하는 글을 쓴 셈인데, 이 사실은 뒤에 사건의 상징적 장면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4.6. 주요 논지 [편집]

과제 카드의 논지는 크게 다섯 갈래로 나뉜다. 가장 많이 쓰인 것은 병역 개편 관련 논지였다.

* 「사비에트가 박수치는 개혁」 — 병역 개편안을 사비에트 국제방송의 논평과 나란히 놓아 둘을 동일시하는 논지. 과제 카드 612건에서 쓰였다.
* 「1945년의 반복」 — 해협 긴장완화 회담을 1945년 콘스탄티노폴 포기에 빗대어 굴욕 외교로 규정하는 논지.
* 「기록을 넘기는 자」 — 과거사 특별법에 따른 기록 이관을 "적에게 정보기관 문서를 넘기는 일"로 묘사하는 논지.
* 「임대주택 적자」 — 공공임대주택 예산 확대를 재정 파탄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제 논지. 기획반 내부 문건은 이 논지를 안보 논지의 신빙성을 높이는 「완충재」로 불렀다.
* 「대통령의 가족」 — 엘스워스 부인이 이사로 있던 자선재단이 사비에트계 단체의 기부를 받았다는 주장 등 대통령 가족에 관한 게시물. 2012년 8월 이후 급증했으며, 재판에서 모두 허위로 판명되었다.

콜턴을 직접 지지하는 게시물은 드물었다. 기획반은 과제 카드마다 "후보 이름을 쓰지 말고 '정부'를 쓸 것"이라는 지침을 달았다. 선거법 적용을 피하려는 장치였는데, 이 지침은 뒤에 재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둘러싼 핵심 쟁점이 되었다.

4.7. 규모 [편집]

항목
규모
운용 계정
약 2,920개
ㄴ 국가정보국
약 1,340개
ㄴ 외곽 협력망
약 1,120개
ㄴ 해군정보부
약 460개
과제 카드
3,042건
게시물
약 83만 건 (추정)
누적 노출
약 3억 1천만 회
2012년 대응실 예산
약 1,860만 달러

게시물 83만 건은 재검증 위원회가 복원한 게시 도구 로그를 근거로 추정한 수치로, 재게시와 공유를 포함한다. 2013년 1차 기소 당시 검찰이 특정한 게시물은 2만 7,316건에 불과했고, 2018년 재수사에서 11만 4천여 건으로 늘었다. 재수사 특정분의 내용 분류는 정부 정책 비난 61.4%, 안보 일반 18.3%, 대통령 개인·가족 17.2%, 콜턴 지지 3.1%였다.

5. 경과 [편집]

5.1. 시범 운용 (2010~2011) [편집]

재검증 위원회가 공작의 출발점으로 본 것은 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국장 주재 간부회의다. 복원된 「국장 지시·강조사항」 회의록에 따르면 해스컬은 이날 "적성 여론은 국외에서 오든 국내에서 오든 같은 전장이다. 전장을 국경으로 나누는 것은 적에게만 유리하다"고 말했다. 한 달 뒤인 12월, 앞서 언급한 「논지 일치」 기준이 실무 지침에 들어갔다.

첫 국내 표적은 선거가 아니라 과거사 특별법이었다. 2011년에 발행된 과제 카드 1,690건 가운데 38%가 특별법 입법과 관련된 것이었고, 주된 논지는 「기록을 넘기는 자」였다. 특별법은 결국 그해 제정되었지만, 대응실은 이 기간에 과제 카드 체계와 계정 기반, 외곽 협력망을 모두 갖추었다. 같은 해 9월에는 해군정보부와의 공동대응 약정이 체결되었다.

5.2. 대선 국면 (2012년 3월~11월) [편집]

엘스워스가 「정보기관 개혁 3원칙」을 발표하고 한 달 뒤인 2012년 3월, 작전본부는 「2012 하반기 정보환경 종합대응계획」(문서번호 12-B)을 수립했다. 계획서는 목표를 "정보환경의 급격한 변동에 대비하여 적성 여론의 확산을 차단한다"고 적었을 뿐 선거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획서의 3단계 일정, 즉 3~6월 기반 확충, 7~9월 확산, 10~11월 집중은 선거 일정과 정확히 겹친다. 대응실 인원은 이 계획에 따라 3월 94명에서 11월 164명으로 늘었고, 협력망 활동비도 이때 크게 늘었다.

이 무렵 작전본부 부국장 빅토르 A. 셰르바코프는 콜턴 캠프의 안보정책단장이던 퇴역 해군 소장 월터 K. 헤인즈와 네 차례 만났다. 만남의 성격은 재수사에서 핵심 쟁점이 되었으며, 아래 「캠프는 알고 있었는가」 문단에서 따로 다룬다.

5.3. 02시 14분 게시물 [편집]

2012년 10월 9일 화요일 새벽, 나보레 시내 분산 작업장 2호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전파반 계약직 요원 테오 R. 비달(당시 27세)은 과제 카드 12-1187을 처리하고 있었다. 02시 무렵 콘스탄티노폴 호스팅 업체의 정기 점검으로 중계 서버가 멈추자 게시 도구 「우편함」에 "발신 경로 없음"이라는 오류가 떴다. 06시 기한까지 처리할 카드가 밀려 있던 비달은 업무용 노트북의 일반 브라우저로 계정 「phare_belfort」에 직접 로그인해 게시를 시도했다. 이때 그는 게시 도구의 미리보기 창에서 대응문만이 아니라 카드 전체를 복사했다.

02시 14분, 대형 포털 「오리종」의 토론광장 정치 게시판에 다음 글이 올라갔다.

[과제 12-1187]

원문: 사비에트 국제방송 10월 8일 논평 「루이나의 병영이 비어 간다」

대응 방향: 병역 개편안을 원문 논지와 동일시. 개편안의 주체는 '정부'로 표기하고 후보명 사용 금지.

강조 표현: "사비에트가 박수치는 개혁"

대응문(단문): 사비에트 방송이 반기는 병역 개편, 누구를 위한 개혁입니까?

게시 채널: 오리종 토론광장, 브리즈

기한: 10월 9일 06시


비달은 9분 뒤인 02시 23분 게시물을 지웠다. 그 사이 조회 수는 41회였다. 조회자 중 한 명인 벨포르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생 야니크 D. 브르통(당시 29세)이 02시 17분 화면을 캡처했고, 07시 50분 마이크로블로그 「브리즈」에 캡처본을 올렸다. 캡처본은 정오까지 11만 회 넘게 공유되었다.

이 한 번의 장애가 두 가지 흔적을 동시에 남겼다는 점은 이후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카드 전체가 복사되면서 공작의 내부 형식이 드러났고, 중계 서버를 거치지 않은 직접 접속 때문에 발신지가 나보레의 가정용 회선으로 기록되었다. 계정 등록지와 서버를 국외에 두어 국외 활동의 외형을 만든 구조가, 서버가 멈춘 9분 동안 국내 활동의 증거를 남긴 것이다.

5.4. 보도와 고발 [편집]

《라 부아》 기자 세실 B. 앙리오는 10월 9일 오후 온라인판에 「'과제 12-1187'은 무엇인가」를 실었고, 다음 날 지면 1면에 이어 보도했다. 같은 날 사회민주당 선거대책본부 디지털상황실장 엘로디 R. 샤퓌의 팀은 10월 9일 06시부터 08시 사이에 46개 계정이 카드의 단문 대응문을 그대로 또는 몇 단어만 바꿔 게시한 사실을 확인했다. 46개 계정은 모두 오리종의 「국외 번호 인증」 표시를 달고 있었고, 생성 시기는 2011년 4월, 2011년 10월, 2012년 3월의 세 묶음으로 나뉘었다. 사회민주당은 10월 11일 기자회견에서 이 분석을 공개했다.

국가정보국은 10월 11일 "국가정보국은 해당 게시물과 무관하며, 게시물은 국외 발신 선전물을 인용한 개인의 게시물로 보인다"는 입장을 냈다. 재수사에서 이 입장문은 정보환경대응실장 도미니크 L. 파레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엘스워스는 같은 날 정보감찰관에게 특별감사를 지시했지만, 국가정보국은 진행 중인 작전은 사후 보고 대상이라는 정보활동감독법 조항을 들어 자료 제출을 미뤘다. 감찰관실이 선거 전까지 받은 자료는 요청분의 11%였다.

10월 12일 금요일 사회민주당은 오리종 본사가 있는 벨포르의 시경찰에 성명불상자를 공직선거법·국가정보국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5.5. 벨포르 시경찰의 수사 [편집]

사건은 벨포르 시경찰 사이버범죄수사대 수사팀장 쥘 A. 마레샬 경감(당시 41세)에게 배당되었다. 마레샬 팀은 10월 15일 영장을 받아 오리종의 접속 기록을 확보했다. 46개 계정의 접속은 거의 모두 콘스탄티노폴의 중계 서버에서 왔지만, 02시 14분 게시물 하나만 나보레의 가정용 회선에서 왔다. 회선 가입자는 「레스트랑 시설관리」였다.

10월 24일 수요일 마레샬 팀은 조달 공고 기록을 통해 레스트랑 시설관리가 국가정보국 지원본부와 「나보레 소재 정부 시설」의 관리 위탁 계약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가정보국과의 연결이 처음으로 서류로 확인된 순간이다. 팀은 25일 분산 작업장 2호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26일 오전 집행할 예정이었다.

5.6. 광역수사국 이관 [편집]

10월 26일 금요일 07시, 광역수사국 방첩수사국은 벨포르 시경찰에 1982년 법무부령 「정보기관 관련 사건의 관할에 관한 규정」에 따라 사건을 넘겨받는다고 통보했다. 이 규정은 정보기관 직원이 관련된 사건을 광역수사국 방첩수사국의 전속 관할로 정하고 있었다. 광역수사국이 사건의 성격만으로 관할을 주장할 수 있는 루이나 경찰 체계에서 이 통보를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압수수색은 같은 날 10시 40분 광역수사국이 직접 집행했다.

분산 작업장 2호에서는 노트북 세 대가 나왔다. 그러나 이웃 주민들은 전날 밤 1호와 3호에서 상자가 실려 나갔다고 진술했고, 실제로 두 곳은 비어 있었다. 재수사에서 10월 25일 21시 12분 광역수사국 방첩수사국 차장실과 국가정보국 지원본부 사이의 통화 기록이 확인되었으나, 통화 내용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마레샬은 10월 29일 압수물과 수사 기록을 넘기면서 이관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첨부했다. 의견서는 "피의자가 소속된 정보공동체의 다른 기관이 수사를 맡는 것은 관할 규정의 취지와 무관하게 수사의 외관을 해친다"고 적었다.

10월 30일 광역수사국 방첩수사국 디지털분석과장 이리나 S. 코르닐로바는 분석 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 분석 기간은 10월 1일부터 10월 9일까지로 한정한다.
* 국외 번호로 등록된 계정은 국외 사안이므로 분석에서 제외한다.
* 검색어는 두 후보의 이름, 두 정당의 이름, 「선거」, 「투표」의 6개로 한다.
* 노트북 세 대 중 비달이 쓴 한 대만 분석하고, 나머지 두 대는 공용 장비로서 사용자를 특정할 수 없으므로 분석을 보류한다.

이 범위는 공작의 구조와 정확히 맞물렸다. 모든 계정이 국외 번호로 등록되어 있었으므로 계정 분석은 처음부터 배제되었고, 과제 카드가 후보명 사용을 금지했으므로 검색어에 걸리는 게시물도 거의 없었다. 검색 결과는 6건으로, 모두 뉴스 기사를 인용한 문장이었다. 국가정보국이 선거법 적용을 피하려고 만든 장치와, 국외 활동의 외형을 갖추려고 만든 장치가 광역수사국의 분석 범위에서 그대로 수사 회피의 근거가 된 것이다.

5.7. 11월 1일 발표 [편집]

11월 1일 목요일 21시부터 22시 40분까지 루이나 방송공사(RBC)에서 마지막 대선 후보 TV 토론이 열렸다. 토론이 끝나고 30분 뒤인 23시 10분, 광역수사국 수도권 지역본부는 보도자료를 냈고, 지역본부장 레지스 P. 오방이 23시 20분 브리핑에 나섰다.

광역수사국 수도권 지역본부 보도자료 (2012년 11월 1일 23시 10분, 발췌)

분석 대상 노트북에서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게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해당 직원이 국외 정보환경 대응 업무를 수행한 사실은 확인되었으며, 이는 국가정보국의 소관 업무에 해당한다.


보도자료는 분석 기간, 국외 등록 계정 제외, 검색어 제한, 노트북 두 대의 분석 보류를 하나도 밝히지 않았다. 광역수사국이 진행 중인 사건의 중간 결과를 발표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다음 날 《르 나시오날》은 1면에 「NIA 선거 개입 없었다」는 제목을 달았고, 《카날 7》도 같은 취지로 보도했다. 마레샬은 발표 사실을 TV 뉴스로 알았다. 그는 11월 2일 "발표는 분석 범위의 제한을 밝히지 않았다"는 내부 메모를 남겼는데, 이 메모는 이후 청문회 증언의 근거가 되었다.

재수사에서는 이 보도자료가 11월 1일 20시부터 23시 사이에 네 차례 고쳐졌다는 사실이 광역수사국 내부 메신저 기록으로 확인되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이라는 구절은 토론이 끝난 뒤인 22시 47분에 들어갔고, 이 구절을 넣은 사람은 오방 자신이었다.

5.8. 선거 [편집]

11월 4일 일요일 선거에서 콜턴이 1.5%p, 약 77만 표 차로 이겼다. 출구조사에서 마지막 사흘 사이에 지지 후보를 정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11%였고, 이들 가운데 58%가 콜턴을 찍었다고 답했다. 엘스워스는 11월 5일 01시 30분 패배를 인정하면서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선거에는 밝혀져야 할 것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6. 수사 [편집]

6.1. 특별수사단 (2012년 11월~2013년 8월) [편집]

11월 26일 법무장관 조르주 H. 바랭은 검사 로랑 V. 사바티에를 단장으로 검사 14명, 수사관 40여 명 규모의 「정보기관 선거 개입 특별수사단」을 꾸렸다. 관할 규정은 수사기관 사이의 관할을 정한 것이어서 검찰의 직접 수사를 막지 못했고, 사건은 12월 3일 법무장관의 지휘로 광역수사국에서 특별수사단으로 넘어갔다. 마레샬은 12월 10일 특별수사단에 파견되었다.

같은 12월 3일, 사회민주당과 유권자 1,204명은 대법원에 선거무효소송을 냈다.

선거에서 진 정부가 퇴임까지 남은 9개월 동안 수사를 이끌었다는 점은 이 사건의 특징이다. 이 기간의 수사는 수사 의지 면에서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정권 교체가 예정된 상황에서 국가정보국 내부의 협조를 얻기 어려웠다. 직원들은 수사에 협조한 기록이 아홉 달 뒤 새 정부 아래에서 어떻게 쓰일지를 계산했고, 실제로 협조자는 계약직과 하위직에 한정되었다.

6.2. 마레샬 증언 [편집]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마레샬은 상원 정보위원회 공개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분석 범위가 어떻게 정해졌는지, 노트북 두 대의 분석이 왜 보류되었는지, 11월 1일 발표가 무엇을 밝히지 않았는지를 차례로 증언했다. 증언 중 "수사의 방향이 수사 대상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는 말은 이후 사건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었다.

민주공화당 소속 위원들은 마레샬의 정치 성향과 사회민주당 인사들과의 접촉 여부를 캐물었다. 마레샬은 어느 정당에도 가입한 적이 없었다. 광역수사국은 2013년 10월 그를 위증 혐의로 고발했으나, 2014년 4월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6.3. 협력자와 압수수색 [편집]

2013년 2월 4일 비달이 특별수사단에 자진 출석했다. 그는 2012년 6월부터 야간 근무 때마다 처리한 과제 카드를 몰래 출력해 집에 보관해 왔고, 그 312장을 제출했다. 출력 이유에 대해 그는 "나중에 나 혼자 뒤집어쓸까 봐"라고 진술했다.

3월 14일 목요일 특별수사단은 나보레의 국가정보국 본청을 압수수색했다. 국가정보국 창설 이래 첫 압수수색으로, 1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가정보국은 작전 보안을 이유로 서버 자료 대부분의 제출을 거부하거나 늦췄고, 특별수사단이 확보한 전자 자료는 요청분의 일부에 그쳤다.

4월에는 기획반장 이자벨 K. 노르드가 수사협력자감형법에 따른 협력자가 되었다. 노르드는 기획반이 매일 아침 작전본부 부국장실의 「일일 대응 방향」을 받아 과제 카드를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문서는 없었고, 2013년 6월 퇴직한 셰르바코프는 1차 수사에서 참고인 조사에 그쳤다.

6.4. 국장의 사임과 1차 기소 [편집]

엘스워스는 4월 18일 상원에 해스컬 해임 동의를 요청했다. 상원 정보위원회가 청문 절차를 이유로 표결을 미루는 사이, 해스컬은 5월 2일 목요일 임기 만료 59일을 앞두고 사임했다.

특별수사단은 5월 21일 화요일 해스컬을 비롯한 13명을 기소했다. 국가정보국에서 해스컬, 파레, 노르드, 비달과 반장급 등 9명, 광역수사국에서 오방 1명, 외곽 협력망에서 「해군 전우연합회」 청년부 사무국장 크리스토프 J. 마를로 등 3명이었다. 해스컬에게는 국가정보국법 제9조·제21조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었다.

6.5. 해군정보부 가담의 발각 [편집]

2013년 7월 8일 월요일, 중도 일간지 《르 마탱》은 한 달 전 전역한 해군 징집병 나탈리아 V. 오를로바의 복무 일기를 입수해 보도했다. 일기에는 제5처의 「번역 실습」이 무엇이었는지, 징집병들이 병역 개편안에 반대하는 글을 하루 몇 건씩 썼는지가 날짜별로 적혀 있었다. 이 문서 첫머리에 인용한 6월 14일자 일기가 그 가운데 하나다.

국방부는 8월 자체 조사 결과를 내고 "제5처 일부 장병의 일탈이며, 조직적 지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 검찰은 「번역 실습」이 정식 일과표에 올라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10월 제5처장 오스카 H. 룬드그렌 대령 등 4명을 군사법원에 기소했다. 해군정보부는 오를로바를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고발했으나 2014년 불기소 처분되었다.

6.6. 선거무효소송 기각 [편집]

대법원은 2013년 6월 12일 수요일 선거무효소송을 5 대 4로 기각했다. 다수의견은 "선거 과정에 위법이 있었을 개연성은 인정되나, 그 위법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정도에 이르렀음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소수의견 4명은 "영향의 증명 책임을 원고에게 지우면, 공작이 은밀할수록 선거무효는 어려워진다"고 반박했다. 콜턴은 판결 석 달 뒤인 9월 1일 취임했다.

6.7. 콜턴 정부 출범과 수사 축소 [편집]

콜턴 정부의 첫 국가정보국장은 에드먼드 T. 볼드윈이었고, 법무장관은 프레스턴 L. 우드였다. 우드는 9월 24일 특별수사단에 정보기관 고위직을 소환할 때는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지휘 지침을 내렸다.

10월 21일 사바티에는 승인 없이 셰르바코프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우드는 11월 4일 사바티에를 직무에서 배제했고, 사바티에는 12월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은 뒤 2014년 1월 톨루즈 지방검찰청으로 전보되었다. 특별수사단은 검사 5명으로 줄어 벨포르 지방검찰청 공안부에 흡수되었다.

2013년 12월 16일 국가정보국은 정보환경대응실을 폐지하고 분석본부 산하에 71명 규모의 「대외소통분석과」를 신설했다. 국가정보국은 이 개편을 "전임 정부가 제시한 개혁 과제를 이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엘스워스의 공약이 이름만 이행된 셈이다. 전파반 97명 가운데 상당수는 다른 부서로 흩어졌지만, 핵심 인력은 새 과에 남았다.

2014년 1월 국가정보국 과학기술본부는 정기 교체를 이유로 과제 원장이 저장된 서버를 교체하고 초기화했다. 특별수사단이 2013년 3월 걸어 둔 보존 요청은 2012년 10월 1일부터 26일까지의 자료만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2014년 2월 3일 보수 방송 《카날 7》은 검찰총장 마르셀 D. 앙크틸의 어머니가 11년 동안 국민주택공사 임대아파트에 살았으며, 앙크틸이 세대원으로 등록되어 있던 기간에는 소득 기준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앙크틸은 2월 10일 사임했다. 2018년 재수사에서 광역수사국 방첩수사국 요원 한 명이 보도 사흘 전인 1월 14일 「방첩 사안 신원 확인」 명목으로 주거복지청(HWA)의 입주자 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요원은 기소되었으나, 조회를 지시한 윗선은 밝혀지지 않았다.

해스컬 재판의 파기환송심이 열린 2015년 12월 이후 검찰은 새 증거를 한 건도 신청하지 않았고, 공판 기일은 17차례 연기되었다.

6.8. 17-3호 작전으로의 연속 [편집]

상세 내용은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 문서와 코발 게이트 문서 참고.


2015년 6월 대통령실은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 유족 농성에 대한 국내 여론공작을 국가정보국 심리전 부서에 지시했다. 17-3호 작전이다. 재검증 위원회는 이 작전을 수행한 대외소통분석과 71명 가운데 43명이 정보환경대응실 출신이었고, 작전에 쓰인 「분석 요청서」가 과제 카드의 항목 구성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7-3호 작전의 외부 실행을 맡은 메리디앙 여론연구소 디지털 커뮤니케이션팀 37명 가운데 6명은 2012년 외곽 협력망 출신이었다.

2012년의 공작이 현직 대통령에 맞선 조직의 결정이었다면, 2015년의 공작은 대통령실의 지시였다. 콜턴을 당선시키는 데 쓰인 조직이 그대로 살아남아 콜턴 정부의 도구가 된 것이다. 재검증 위원회 보고서는 이를 두고 "처벌받지 않은 조직은 주인을 바꿀 뿐 사라지지 않는다"고 적었다. 17-3호 작전의 표적 가운데에는 당시 유족 농성에 참여한 대학생 루스탈지아 그래이가 있었다.

6.9. 재수사 (2017~2019) [편집]

2017년 9월 1일 새 정부가 출범하자, 국가정보국은 10월 10일 내부에 「정보활동 재검증 위원회」를 두었다. 위원장은 전 대법관 안나 F. 레비츠카야였고, 외부 위원 7명과 내부 위원 4명으로 구성되었다. 마레샬은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전환점은 12월 6일 수요일 톨루즈의 원격지 기록보존 시설에서 나왔다. 국가정보국은 2009년 재해복구 규정에 따라 주요 서버의 월간 백업 테이프를 원격지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2014년 서버 교체는 이 테이프에 미치지 않았다. 위원회가 복원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 과제 카드 3,042건 중 2,958건(97.2%)과 각 카드의 작성·승인 로그
* 작전본부 부국장실 「일일 대응 방향」 208건. 모두 셰르바코프의 승인 서명이 남아 있었다.
* 「국장 지시·강조사항」 회의록 94회분
* 게시 도구 「우편함」의 게시 로그. 게시물 약 83만 건이라는 추정치의 근거가 되었다.

2018년 2월 벨포르 지방검찰청에 재수사팀이 꾸려졌다. 재수사팀은 3월 광역수사국을 압수수색해 7년 보존 규정에 따라 남아 있던 2012년 내부 메신저 기록을 확보했다. 11월 1일 보도자료의 수정 이력, 10월 25일 통화 기록, 그리고 11월 1일 22시 51분 광역수사국 수도권 지역본부 공보관의 휴대전화에서 헤인즈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이 과정에서 나왔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재수사로 추가 기소된 인원은 군 검찰이 기소한 해군정보부 2명을 포함해 18명이다.

7. 재판 [편집]

7.1. 해스컬 재판 [편집]

벨포르 지방법원은 2014년 3월 20일 해스컬의 국가정보국법 위반은 유죄로,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로 판단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계정 등록지와 서버가 국외에 있더라도 게시물이 향한 대상이 국내 유권자라면 국내 활동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게시물이 후보 이름을 쓰지 않았고 콜턴 지지 게시물이 극히 적었다는 점에서,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벨포르 고등법원은 2015년 2월 12일 공직선거법 위반까지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4년을 선고해 해스컬을 법정구속했다. 항소심 판결은 이 사건의 성격을 가장 명확히 정리한 문장으로 자주 인용된다.

벨포르 고등법원 2015년 2월 12일 선고 (발췌)

현직 대통령이 후보로 나선 선거에서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그 후보의 낙선을 도모하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후보의 이름을 쓰지 말라는 지침은 선거운동의 목적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오히려 피고인들이 그 목적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대법원은 2015년 10월 29일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국외성 판단에 대해서는 "활동의 국외성은 그 활동이 주로 향하는 사람들의 소재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며 원심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비달이 제출한 출력본 312장은 작성자와 작성 시점을 확인할 수 없고 원본 전자 기록과 같은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의 핵심 증거가 빠지면서 이 부분은 다시 심리하게 되었다. 해스컬은 같은 해 11월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났다.

파기환송심은 2015년 12월 시작되었으나 앞서 적은 대로 사실상 멈춰 있었다. 재검증 위원회가 복원한 원본 전자 원장이 2018년 3월 증거로 제출되면서 증거능력 문제가 해소되었고, 2018년 2월 별도로 기소된 국고손실 혐의(협력망 활동비를 「국외 협조자 사례비」 항목에서 전용한 부분)가 병합되었다. 파기환송심은 2018년 6월 21일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2019년 3월 28일 재상고를 기각했다.

7.2. 셰르바코프 재판 [편집]

셰르바코프는 2018년 4월 국가정보국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국고손실 혐의로 기소되었다. 「일일 대응 방향」 208건의 승인 서명이 핵심 증거였다. 그는 2019년 1월 피고인 신문에서 대응 방향을 승인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것이 선거 개입이었다는 점은 끝까지 부인했다. 이 문서 첫머리에 인용한 발언이 이때 나왔다. 1심은 2019년 5월 징역 4년을, 항소심은 11월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고, 2020년 4월 확정되었다.

7.3. 광역수사국 관계자 재판 [편집]

오방은 1차 기소에서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혐의 모두 무죄를 받았다. 2014년 9월 1심은 발표의 시점과 내용이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에서 나왔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2015년 5월 항소가 기각된 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해 확정되었다.

그러나 오방은 자신의 1심 재판에서 "보도자료 문안은 실무진이 작성했고 나는 최종본만 승인했다"고 증언했는데, 재수사에서 확보한 메신저 기록은 그가 22시 47분 직접 문구를 넣었음을 보여 주었다. 같은 사실로 다시 기소할 수는 없었으므로 재수사팀은 위증 혐의로 그를 추가 기소했고, 2020년 2월 징역 1년 6개월이 확정되었다. 분석 범위를 정한 코르닐로바는 직권남용과 증거은닉 혐의로 기소되어 같은 달 징역 1년 6개월이 확정되었다. 22시 47분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공보관은 공무상비밀누설로 벌금형을, 주거복지청 자료를 조회한 요원은 개인정보 불법 조회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를 받았다.

7.4. 해군정보부 관계자 재판 [편집]

군사법원은 2014년 6월 룬드그렌에게 정치관여 혐의로 금고 1년 6개월을 선고했고, 함께 기소된 장교·부사관 3명은 금고 8개월~1년에 집행유예를 받았다. 재수사에서는 공동대응 약정에 서명한 해군정보부 차장 에릭 S. 뫼르크 소장과 기획처장이 추가로 기소되었다. 군사법원은 2020년 기획처장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나, 뫼르크에게는 약정이 해협 회담을 겨냥한 대외 심리전 목적으로 체결되었으며 국내 게시를 알았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해군정보부의 책임은 결국 처장과 기획처장 선에서 멈췄다.

7.5. 외곽 협력망 재판 [편집]

마를로는 2014년 징역 1년 6개월이 확정되었다. 함께 기소된 팀장 2명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재수사에서는 팀장 4명과 활동비 전달책 1명이 추가 기소되었으나, 팀장 1명은 재판 중 사망해 공소가 기각되었고 1명은 공소시효가 지나 면소되었다.

7.6. 판결 요약 [편집]

기관
기소
유죄
국가정보국
17명
12명
광역수사국
4명
4명
해군정보부
6명
5명
외곽 협력망
8명
6명
합계
35명
27명

무죄는 5명, 공소기각·면소는 3명이다. 오방의 위증 추가 기소는 별도로 세지 않았다.
피고인
당시 직위
확정
마틴 R. 해스컬
국가정보국장
징역 5년
빅토르 A. 셰르바코프
작전본부 부국장
징역 3년 6개월
도미니크 L. 파레
정보환경대응실장
징역 2년 6개월
이자벨 K. 노르드
기획반장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테오 R. 비달
전파반 계약직
벌금 8,000달러
파트리크 J. 르세르
전파반 요원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레지스 P. 오방
MIA 수도권 지역본부장
징역 1년 6개월 (위증)
이리나 S. 코르닐로바
MIA 디지털분석과장
징역 1년 6개월
오스카 H. 룬드그렌
해군정보부 제5처장
금고 1년 6개월
크리스토프 J. 마를로
외곽 협력망 팀장
징역 1년 6개월

노르드와 비달은 수사협력자감형법에 따라 감형되었다. 볼드윈은 2014년 서버 교체와 관련해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교체가 정기 일정에 따른 것이었다는 반론을 넘지 못해 2018년 불기소 처분되었다. 대신 서버 교체 직전 원장 사본의 파기를 지시한 대외소통분석과장이 증거인멸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8. 캠프는 알고 있었는가 [편집]

이 사건은 정부가 정보기관을 동원한 사건이 아니었으므로, 「대통령의 지시였는가」라는 질문 대신 「수혜자는 알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다. 재수사에서 콜턴 캠프와의 연결을 가리키는 정황은 세 가지가 나왔다.

8.1. 네 차례의 만남 [편집]

셰르바코프와 헤인즈는 2012년 5월 17일, 7월 3일, 9월 11일, 10월 18일 벨포르의 호텔 사르댕에서 만났다. 이 가운데 5월 17일과 9월 11일의 만남은 국가정보국이 1992년부터 이어 온 「주요 정당 후보 안보 브리핑」 관행에 따른 공식 일정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나머지 두 번은 공식 기록에 없었고, 2018년 호텔 결제 기록과 셰르바코프의 개인 수첩으로 확인되었다. 7월 3일은 종합대응계획 12-B의 「확산」 단계가 시작된 직후였고, 10월 18일은 02시 14분 게시물이 드러난 지 9일 뒤였다.

8.2. 정세분석 문건 12건 [편집]

2018년 5월 헤인즈의 전 보좌관이 캠프 시절 보관하던 「정세분석 문건」 12건을 재수사팀에 제출했다. 문건은 병역 개편과 해협 회담을 둘러싼 온라인 여론의 흐름을 주 단위로 분석한 것으로, 발신 기관 표시는 없었다. 그러나 문건 가운데 5건에 「1945년의 반복」, 「완충재」 등 과제 카드와 같은 표현이 들어 있었고, 문서 서식이 정보환경대응실의 「정보환경 일일 보고」와 일치했다.

8.3. 22시 51분 문자메시지 [편집]

2012년 11월 1일 22시 51분, 광역수사국 수도권 지역본부 공보관의 휴대전화에서 헤인즈에게 "23시 10분 발표. 흔적 없음."이라는 문자메시지가 발송되었다. 보도자료가 나가기 19분 전이다. 공보관은 발표 일정을 언론인 연락 목록에 보내다 실수로 헤인즈가 포함되었다고 진술했으나, 같은 시각 같은 목록의 다른 수신자에게 발송된 기록은 없었다. 헤인즈는 다음 날 아침까지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8.4. 반론과 결론 [편집]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네 번 중 두 번은 공식 브리핑이었고, 정세분석 문건은 분석 자료일 뿐 공작 지시나 협력 요청이 담겨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종합대응계획 12-B는 3월에 수립되어 첫 만남보다 두 달 앞섰으므로, 공작은 캠프와 무관하게 시작되었다. 셰르바코프는 법정에서 "캠프에 무엇을 해 달라고 한 적도, 무엇을 해 주겠다고 한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2018년 11월 헤인즈를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했다. 문건의 수령만으로는 공모를 입증할 수 없고, 22시 51분 메시지는 공무상비밀누설의 수신자일 뿐 공범으로 볼 근거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헤인즈는 이후 코발 게이트로 기소되었다. 콜턴은 2018년 6월 성명에서 "나는 어떤 정보기관에도 도움을 청한 적이 없다. 그들이 무엇을 했든 그것은 그들의 일이었다"고 밝혔다. 뒷문장은 개입의 수혜는 부정하지 않으면서 책임만 떼어 낸 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법원은 캠프와의 공모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셰르바코프 1심 판결은 공작의 동기를 "조직의 존속에 대한 위기감과 지휘부의 안보관이 결합된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재검증 위원회의 결론과도 같다. 캠프가 무엇을 얼마나 알았는지는 현재까지 규명되지 않았다.

9. 피해 사례 [편집]

공작의 피해는 선거 결과를 둘러싼 논쟁에 가려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국가정보국은 1차 수사 내내 공작이 겨눈 것은 사람이 아니라 「논지」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검증 위원회가 복원한 과제 카드와 일일 보고에는 실명, 사진, 거주지 등으로 특정된 개인이 1,106명 등장했다. 위원회는 2018년 보고서 별책 「개인 피해 사례」에서 이들 가운데 312명의 피해를 확인했다. 아래는 그 가운데 언론 보도로 널리 알려진 사례들이다.

9.1. 「적색청소부」와 아홉 살 아이 [편집]

2012년 4월, 아홉 살 레아의 사진 아래 한 계정이 댓글을 달았다. “강간하고 싶지 않냐?” 그러자 수많은 누리꾼이 보기에도 민망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중 ‘적색청소부’란 누리꾼이 쓴 댓글은 이랬다. “지 애미처럼 저 X도 커서 빨갱이 될 거 아님? 사민당 애들에게 X주고…”.
특별수사단의 공소장에 붙은 계정 목록이 공개되었다. 그 가운데 낯익은 이름 하나가 이네스 가르니에의 눈에 들어왔다. 「적색청소부」. 딸에게 모욕을 퍼부었던 바로 그 계정이었다.

2013년 6월 21일 《라 부아》 「"국가가 아홉 살 딸에게 어떻게…" 딸은 지금도 낯선 사람을 피한다」

이네스 P. 가르니에는 병역 개편을 지지하는 시민단체 「징병제 개혁 시민연대」의 대변인이었다. 2012년 4월 14일 벨포르에서 열린 병역 개편 지지 가족 집회에서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브리즈에 올라가 널리 공유되었고, 사흘 동안 사진 아래에 모욕 댓글 400여 개가 달렸다. 가르니에는 당시 성명불상자를 모욕 혐의로 고소했지만, 계정이 모두 국외 번호로 등록되어 있다는 이유로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다.

2018년 복원된 「정보환경 일일 보고」에서 이 사진이 2012년 4월 15일자 보고의 「논지 일치 게시물 — 병역 개편 지지 선동」 항목에 올라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모녀의 사진 자체가 대응 대상으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같은 날 발행된 과제 카드 12-0412의 대응 방향 칸에는 "시민단체의 아동 동원을 부각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 아래로 몰려든 계정 가운데 31개가 국가정보국과 외곽 협력망의 계정이었다.

「적색청소부」는 게시 도구 로그를 통해 전파반 주간조 요원 파트리크 J. 르세르(당시 38세)가 운용한 계정으로 확인되었다. 인물 설정서상 이 계정은 「퇴역 군인」 유형이었고 금지 표현 목록에는 「욕설」이 들어 있었지만, 르세르는 이 계정으로 2년 동안 2,100여 건을 게시하면서 설정서를 지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도달 지수는 전파반 상위 5% 안에 들었고, 그는 두 해 연속 근무평정 최고 등급을 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극적인 표현일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 구조가 개인의 일탈을 조직의 성과로 바꾸었다"고 지적했다.

국가정보국은 2013년 계정 목록이 공개되었을 때 "업무와 무관한 개인의 일탈"이라는 입장을 냈고, 운용자의 신원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에는 작전 보안을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르세르는 2018년 기소되었으나, 적용된 혐의는 국가정보국법 위반뿐이었다. 모욕죄의 공소시효 5년이 2017년 4월에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2019년 9월 1심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피해 아동에 대한 모욕은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되었다. 이 문장이 알려지자 거센 비판이 일었고, 같은 해 아동 대상 모욕의 공소시효 특례가 입법되는 계기가 되었다.

가르니에는 선고 뒤 기자들에게 "그들은 내 딸을 '논지'라고 불렀다. 딸은 그 뒤로 7년 동안 자기 사진을 한 장도 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9.2. 도용된 얼굴 [편집]

앙드레 콜랭은 34년을 해군에서 보냈다. 퇴역식 날 지역 신문이 찍어 준 사진은 거실 벽에 걸려 있었다. 지난가을, 그 사진이 열네 개의 계정에서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었다.
옛 전우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자네가 이런 글을 쓸 줄은 몰랐네." 콜랭은 30년 동안 사회민주당 당원이었고, 지난 선거에서 엘스워스에게 표를 던졌다. "내 얼굴이 내가 찍은 사람을 욕하고 있었습니다."

2013년 2월 27일 《르 마탱》 「"내 얼굴이 내가 찍은 대통령을 욕하고 있었다"」

앙드레 M. 콜랭(당시 67세)은 톨루즈에 사는 퇴역 해군 원사였다. 2012년 가을부터 그의 퇴역식 사진을 프로필로 쓴 계정 14개가 병역 개편과 해협 회담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계정들은 모두 인물 설정서의 「퇴역 군인」 유형이었다. 《르 마탱》은 사회민주당이 공개한 계정들의 프로필 사진을 역추적하다가 그의 사진을 찾아냈다.

재검증 위원회에 따르면 국가정보국이 직접 운용한 계정 1,340개 가운데 219개가 인터넷에서 수집한 실존 인물의 사진을 썼다. 인물 설정서의 「사진 출처」 칸에는 「지역 신문 인터넷판」, 「부고 기사」, 「동창회 게시판」 등이 적혀 있었다. 위원회는 이 가운데 187명의 신원을 확인했는데, 그중 11명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부고 기사에 실린 사진이 쓰인 것이다. 피해자 187명과 유족은 2019년 국가배상 집단소송을 냈고, 2021년 1인당 3,000달러의 배상 판결이 확정되었다.

9.3. 숙제를 거부한 징집병 [편집]

세르게이 말리닌은 번역병이었다. 사비에트 방송을 루이나어로 옮기는 것이 그가 배운 일이었다. 7월의 어느 저녁, 그는 「번역 실습」 시간에 받은 종이를 돌려주었다. "이건 번역이 아닙니다."
다음 날부터 그의 외출과 전화가 막혔다. 두 달 뒤 그는 부적응 병사로 분류되어 연안 경비정으로 옮겨졌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답장했다. "숙제를 안 한 벌로 바다에 왔어요. 여기서는 적어도 거짓말은 안 시켜요."

2013년 8월 5일 《라 부아》 「"숙제 안 한 벌로 바다에 보내졌다"」

세르게이 P. 말리닌(당시 21세)은 오를로바와 같은 제5처 소속 징집병이었다. 군 검찰 조사에 따르면 제5처 징집병 212명 가운데 「번역 실습」을 거부한 사람은 9명이었고, 이 가운데 7명이 외출 제한, 전화 사용 제한, 근무지 전출 같은 불이익을 받았다. 말리닌은 2012년 7월 거부한 뒤 9월 오보레 해군기지 소속 연안 경비정으로 전출되어 전역할 때까지 해상 근무를 했다.

오를로바의 일기가 보도된 뒤 말리닌은 군 검찰에 자진 출석해 거부 경위를 진술했다. 그의 진술은 「번역 실습」이 자율 활동이 아니라 강제된 일과였음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되었다. 군사법원은 2014년 룬드그렌 판결에서 전출 조치를 "지시 거부에 대한 보복"으로 인정했고, 국방부는 같은 해 9명의 복무 기록에서 「부적응」 분류를 지우고 명예를 회복시켰다.

9.4. 이주민 재단 [편집]

드미트리 소콜로프의 차 앞유리에 누군가 스프레이로 한 단어를 써 놓았다. 「간첩」. 그 무렵 인터넷에는 그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돌고 있었다. 사비에트 공작원이 대통령 부인의 재단을 움직이고 있다는 글이었다.
6년 뒤 복원된 문서에서 그는 자기 이름을 찾았다. 과제 카드 12-0877. 대응 방향 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재단 실무자 중 사비에트 출신 인물을 부각할 것." 소콜로프는 말했다. "그들은 나 같은 사람을 흉내 낸 계정으로 나를 공격했습니다."

2018년 3월 12일 《베스트니크》 「"그들은 나 같은 사람을 흉내 내 나를 공격했다"」

드미트리 A. 소콜로프(당시 42세)는 사비에트에서 이주한 부모 아래 벨포르에서 태어난 이주민 2세로, 사비에트 출신 이주민의 정착을 돕는 「해협 이주민 지원재단」의 사무국장이었다. 엘스워스 대통령의 부인은 2004년부터 이 재단의 이사였다. 「대통령의 가족」 논지가 급증한 2012년 8월 이후 재단이 사비에트 측 단체의 돈을 받았다는 주장이 퍼졌고, 소콜로프는 그 중개자로 지목되었다.

재단은 2012년 한 해 동안 기부금이 43% 줄어 직원 4명을 내보냈다. 재단이 사비에트 측 기부를 받은 사실은 없었으며, 2014년 해스컬 1심 판결에서도 해당 주장은 허위로 판명되었다. 복원된 게시 로그에 따르면 소콜로프를 겨냥한 게시물의 상당수는 인물 설정서의 「이주민 2세」 유형 계정, 즉 사비에트를 떠나온 러시아어권 가정의 자녀를 흉내 낸 계정에서 나왔다. 러시아어 주간지 《베스트니크》는 이 보도를 계기로 이주민 공동체를 겨냥한 정보기관 공작의 역사를 다룬 연재를 시작했다.

9.5. 포스터 속 가족 [편집]

포스터 속 카린 모로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새 아파트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벨포르의 새 집」.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홍보에 쓴 사진이었다.
2012년 9월, 인터넷에 그 사진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연출된 배우라는 글,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는 글, 숨긴 소득이 있다는 글이었다. 2주 동안 주거복지청에 그녀를 조사하라는 민원이 1,200건 넘게 들어왔다. 입주 자격 재심사를 두 번 통과한 뒤, 모로는 스스로 그 집을 나왔다.

2018년 4월 2일 《르 마탱》 「포스터 속 엄마는 왜 임대아파트를 떠났나」

카린 J. 모로(당시 34세)는 벨포르의 간호조무사로, 2011년 국민주택공사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뒤 주택도시개발부의 공공임대주택 홍보물에 모델로 참여했다. 「임대주택 적자」 논지를 다룬 과제 카드 12-0931의 대응 방향 칸에는 "홍보물의 사례 인물을 활용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거복지청(HWA) 규정상 입주 자격에 관한 민원이 일정 수 이상 들어오면 재심사를 해야 했다. 재검증 위원회는 2주 동안 들어온 민원 1,200여 건 가운데 870여 건이 외곽 협력망 두 개 팀이 배포한 민원 서식을 그대로 쓴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모로는 두 차례 재심사에서 모두 자격을 인정받았지만, 이웃의 시선과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는 질문을 견디지 못하고 2013년 2월 민간 임대주택으로 이사했다. 그가 낸 국가배상 소송은 2020년 원고 승소로 확정되었다.

행정 절차를 괴롭힘의 수단으로 쓴 이 방식은 군정기 스틸워터 계획의 「제2종 압박」과 자주 비교된다. 차이가 있다면 스틸워터 계획에서는 기관이 직접 절차를 움직였고, 이 사건에서는 민원인을 가장한 협력망이 절차를 움직였다는 점이다.

9.6. 피해 구제 [편집]

재검증 위원회는 별책의 결론에서 "공작 측은 끝까지 자신들이 겨눈 것은 논지였다고 주장했으나, 논지에는 언제나 얼굴이 있었다"고 적었다. 확인된 피해자 312명 가운데 2023년까지 국가배상을 받은 사람은 241명이다. 국가정보국은 2018년 12월 국장 명의로 피해자들에게 사과문을 보냈는데, 국가정보국이 국내 개인에게 공식 사과한 것은 창설 이래 처음이었다.

10. 반응 [편집]

10.1. 정치권 [편집]

민주공화당의 대응은 세 단계로 바뀌었다. 2012년 10월에는 02시 14분 게시물이 사회민주당의 자작극일 가능성을 제기했고, 2013년 상반기에는 "일부 직원의 일탈"이라고 했으며, 해군정보부의 가담이 드러난 뒤에는 "엘스워스 정부가 자기 정보기관을 통제하지 못한 관리 실패"라는 입장으로 옮겨 갔다. 마지막 입장은 사실관계로만 보면 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후 정보기관 통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자주 되풀이되었다.

사회민주당 안에서는 선거 결과를 인정할지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 당내 일부는 콜턴 정부를 "도둑맞은 선거로 들어선 정부"로 불렀으나, 엘스워스는 2013년 6월 선거무효소송이 기각된 뒤 기자회견에서 "선거를 부정하면 우리는 그들이 시작한 일을 끝내 주게 된다"며 선을 그었다. 이 태도를 두고 당내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 있는 승복이었다는 평가와, 수사가 축소되는 과정을 방관하게 만든 소극성이었다는 비판이 지금도 엇갈린다.

10.2. 국가정보국 내부 [편집]

2013년 2월 6일 국가정보국 직원 212명이 익명으로 연서한 서한이 정보감찰관에게 전달되었다. 서한은 "우리는 국외를 향하도록 선서했다. 우리가 향한 곳이 어디였는지 조직이 답해야 한다"고 적었다. 한 달 뒤에는 퇴직자 모임 「NIA 동우회」 소속 90여 명이 "적성 선전에 맞선 직원들을 범죄자로 만들지 말라"는 성명을 냈다. 두 문서는 모두 조직에 대한 충성을 근거로 내세웠다.

사건 이후 국가정보국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2013년 이직률은 4.1%로 평년의 두 배였고, 2013~2014년 신규 채용 지원자는 이전 2년보다 31% 줄었다.

10.3. 대학가와 시민사회 [편집]

2013년 3월 25일 벨포르대학 교수 311명이 시국선언을 냈고, 4월 말까지 64개 대학 교수 4,100여 명이 서명했다. 4월 20일 토요일 대학 총학생회 연합이 벨포르 시청 앞 광장에서 연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6만 명, 벨포르 시경찰 추산 2만 1천 명이 모였다.

오를로바의 일기가 보도된 뒤에는 징집병 부모들이 「징집병 부모 모임」을 만들었다. 남녀 모두를 징집하는 루이나에서 이 모임은 빠르게 커졌고, "우리 아이들을 번역기로 쓰지 말라"는 구호는 2013년 가을 병역 제도 논쟁에서 널리 쓰였다.

10.4. 사비에트의 반응 [편집]

사비에트 국제방송은 2012년 10월 10일부터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다뤘다. 「루이나 정보기관, 우리 방송을 '번역'하다」라는 제목의 논평이 연일 나갔고, 2013년에는 6부작 다큐멘터리 「번역된 민주주의」를 루이나어와 러시아어로 방송했다.

국가정보국이 사비에트 선전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벌인 공작이 사비에트 선전의 가장 좋은 소재가 된 셈이다. 국가정보국 스스로도 2013년 연례 위협평가에서 "사비에트 대외선전의 루이나 대상 도달이 전년보다 늘었으며, 주된 소재는 국내 정보기관 관련 사안"이라고 적었다.

10.5. 제보자에 대한 공격 [편집]

캡처본을 처음 공개한 브르통은 10월 9일 이후 사비에트 동조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가 쓰던 석사 논문의 주제가 사비에트 노동운동사라는 점이 근거로 쓰였고, 지도교수에게는 익명 편지 세 통이 배달되었다. 재수사에서 이 공격을 주도한 계정 11개가 외곽 협력망 「루이나 안보시민포럼」 팀의 계정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사건이 드러난 뒤에도 협력망이 그 사건을 드러낸 사람을 공격하는 데 쓰인 것이다. 브르통은 학위 취득이 1년 늦어졌고, 2019년 민사소송에서 배상 판결을 받았다.

마레샬은 광역수사국의 위증 고발 외에도 온라인에서 사회민주당의 하수인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오를로바는 해군정보부의 고발과 함께 "전우를 판 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징집병 부모 모임이 공개적으로 그를 지지했다.

비달은 양쪽에서 비판받았다. 옛 동료들은 그를 배신자로 불렀고, 진보 진영 일부는 그가 추적당한 뒤에야 나선 실행자였을 뿐 내부고발자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비달 자신도 2021년 회고록에서 "나는 고발하지 않았다. 들켰을 뿐이다"라고 썼다.

11. 영향 [편집]

11.1. 국가정보국법 개정 (2018) [편집]

2018년 11월 국가정보국법이 개정되었다. 개정의 핵심은 의견서 제04-17호가 만든 틈을 법률로 막는 것이었다.

국가정보국법 (2018년 11월 개정, 발췌)

제3조(직무) ① 3. 루이나 대외방송에 쓰일 국외 선전의 분석과 반박 원고의 작성

제9조(국내 활동의 금지) ② 제1항의 국내 활동 여부는 활동이 주로 향하는 사람들의 소재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계정의 등록지, 서버의 소재지, 그 밖의 발신 기반이 국외에 있다는 사실은 국외 활동으로 보는 근거가 되지 아니한다.

③ 국가정보국은 루이나 국내에서 이용되는 정보통신망에 가명 또는 위장 계정으로 게시물을 올려서는 아니 된다. 국외 발신 선전물에 대응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제9조의2(내부 해석의 보고) 국장은 이 법의 적용 범위에 관하여 내부 법령 해석을 한 때에는 30일 이내에 상원 및 하원의 정보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제21조의2(선거기 특별감사) ① 정보감찰관은 대통령 선거일 전 9개월부터 선거일까지 국가정보국의 국내 관련 활동에 대하여 특별감사를 실시한다.

② 국가정보국은 제1항의 감사에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작전 보안을 이유로 거부할 수 없다.


제3조 3호는 「국외 정보환경에 대한 대응」이라는 포괄적 문구를 대외방송 원고 작성으로 좁혔고, 제9조 2항은 2015년 대법원 판결의 수신지 기준을 명문화했다. 제9조의2는 법무관실 의견서처럼 내부 해석이 감독 기관을 거치지 않고 법률의 의미를 바꾸는 일을 막기 위한 조항이다. 제21조의2 2항은 2012년 10월 정보감찰관의 특별감사가 작전 보안을 이유로 무력화된 경험을 반영했다.

국장 신분보장 조항은 유지되었다. 개정 논의 과정에서 임기제를 폐지하자는 안이 나왔으나, 2015년 17-3호 작전처럼 대통령실이 정보기관을 직접 동원하는 위험을 키운다는 반론에 밀렸다. 입법자는 신분보장을 줄이는 대신 감독을 늘리는 쪽을 택했다.

11.2. 관할 규정 폐지 [편집]

1982년 법무부령 「정보기관 관련 사건의 관할에 관한 규정」은 2018년 12월 폐지되었다. 대신 정보공동체 소속 직원이 관련된 선거범죄는 검찰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사국이 공동으로 수사하고, 정보공동체 소속 기관은 다른 정보공동체 기관의 사건을 수사할 수 없다는 「상호 수사 배제 원칙」이 도입되었다. 부처마다 경찰기관을 따로 둔 루이나에서 관할 경합을 수사 회피에 쓰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였으나, 이 원칙이 광역수사국의 방첩 기능 자체를 약화시킨다는 반론도 있었다.

11.3. 공직선거법 개정 (2019) [편집]

2019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공무원의 선거 관여 금지 조항에 "위탁·계약·협력 관계에 있는 사람을 통하여 하는 경우"가 추가되었다. 또 현직 공직자가 후보로 나선 선거에서 그 공직자의 정책이나 직무를 대상으로 한 게시물은 후보자의 이름을 쓰지 않았더라도 선거운동에 해당할 수 있다는 규정이 들어갔다. 2015년 벨포르 고등법원 판결의 논리를 입법한 것이다.

11.4. 아동 대상 모욕의 공소시효 특례 (2019) [편집]

르세르 판결 이후 2019년 12월 형사소송법이 개정되어, 18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모욕죄와 명예훼손죄의 공소시효는 피해 아동이 성년이 될 때까지 진행하지 않게 되었다. 개정 조항은 한때 피해 아동의 이름을 따 불렸으나, 가르니에가 딸의 이름이 법에 붙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밝힌 뒤로 공식 문서와 주요 언론은 그 이름을 쓰지 않는다.

11.5. 포털의 대응 [편집]

오리종은 2013년 3월 같은 문장이 짧은 시간에 여러 계정에서 게시될 경우 이를 표시하는 「동시 게시 군집 표시」 기능을 도입했다. 2019년에는 국외 번호로 인증한 계정의 정치 게시판 이용을 제한했다. 오리종의 「국외 번호 인증」 표시는 원래 2009년 사비에트 측 계정을 가려내기 위해 도입된 것이었는데, 2012년에는 국가정보국 계정을 가려내는 표시로 쓰였다.

11.6. 정치적 영향 [편집]

콜턴 정부는 출범부터 정당성 논란을 안고 시작했다. 선거무효소송은 기각되었지만 1.5%p라는 격차와 11월 1일 발표의 시점은 정권 내내 따라다녔다. 콜턴 정부의 수사 축소는 이 논란을 가라앉히기보다 키웠고, 2015년 웨스트로 참사와 17-3호 작전, 2016년 코발 게이트로 이어지면서 「정보기관을 쓰는 정부」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2017년 출범한 새 정부는 이 사건의 재수사를 정보기관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12. 평가와 논점 [편집]

12.1.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가 [편집]

공작이 선거 결과를 바꾸었는지는 가장 오래된 논쟁이다. 2014년 벨포르대학 정치학과 연구팀은 1차 기소 때 특정된 게시물 2만 7천여 건과 유권자 패널 조사를 바탕으로 공작의 효과를 0.2~0.8%p로 추정했다. 2019년 콜마르대학 연구팀은 복원된 게시 로그 83만 건과 누적 노출 3억 1천만 회를 바탕으로 최대 1.3%p로 추정했다. 두 추정치 모두 실제 격차 1.5%p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두 연구 모두 11월 1일 광역수사국 발표의 효과는 측정하지 않았다. 2020년 RBC의 의뢰를 받은 연구는 마지막 사흘 사이 지지 후보를 정한 유권자 11%를 분석해 발표의 효과를 0.4~1.1%p로 추정했다. 발표의 효과와 게시물의 효과는 같은 유권자에게 겹쳐 작용했을 수 있으므로 단순히 더할 수 없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결과를 바꾸었다고 단정할 근거도, 바꾸지 않았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대체적인 평가다.

일부 연구자는 83만 건의 게시물보다 선거 사흘 전 밤에 나온 보도자료 한 장이 더 큰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건의 핵심은 국가정보국의 여론조작이 아니라 광역수사국의 수사 결과 발표였고, 정보기관이 여론을 만든 것보다 수사기관이 진실을 늦춘 것이 더 결정적이었다.

12.2. 「국외」는 어디인가 [편집]

사건의 법적 쟁점은 대부분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정보기관의 활동이 국외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국가정보국은 발신의 기반이 어디에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고, 법원과 입법자는 활동이 누구를 향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발신지 기준의 핵심에는 콘스탄티노폴이 있었다. 명목상 루이나 보호령이지만 어떤 행정도 미치지 않는 이 지역은 국가정보국에게 서류상 「국외」를 제공하는 장소였다. 재검증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콘스탄티노폴은 루이나 정보기관에게 지리적 국외가 아니라 법적 국외였다"고 적었다. 같은 지역의 비공개 계정이 몇 년 뒤 코발 게이트에서 자금 세탁의 통로로 쓰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수신지 기준에도 한계가 지적된다. 루이나 국내의 러시아어권 주민과 사비에트 주민을 동시에 향하는 러시아어 대외방송처럼, 활동이 「주로」 누구를 향하는지 가리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12.3. 신분보장의 역설 [편집]

국가정보국장의 5년 임기와 해임 제한은 1978년 군정기 정보기관의 국내 사찰에 대한 반성으로 도입된 제도였다. 대통령이 정보기관을 자기 도구로 쓰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였다. 그러나 2012년 이 제도는 정보기관이 대통령에 맞서 선거에 개입하는 동안 대통령이 국장을 교체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3년 뒤 같은 조직이 대통령실의 지시로 17-3호 작전을 수행했다. 재검증 위원회는 이 두 사건을 나란히 놓고 "한 조직이 3년 사이에 대통령의 도구가 될 위험과 대통령에게서 독립한 권력이 될 위험을 모두 보여 주었다"고 평가했다. 신분보장을 늘리면 뒤의 위험이, 줄이면 앞의 위험이 커진다는 점에서, 2018년 개정이 신분보장 대신 감독을 택한 것은 이 딜레마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다.

12.4. 조직의 결정 [편집]

루이나 정보기관의 국내 공작은 흔히 제방 계획과 스틸워터 계획에 견주어진다. 제방 계획이 정부의 결정을 조직이 실행한 것이고 스틸워터 계획이 조직의 결정에 정부가 서명한 것이라면, 이 사건은 정부가 서명하지 않은, 정부에 반하는 조직의 결정이었다. 공작을 승인한 문서는 작전본부의 종합대응계획과 부국장의 일일 대응 방향뿐이었고, 그 위에는 어떤 선출직의 서명도 없었다.

이 점에서 이 사건은 1980년 헌정 회복 이후 만들어진 정보기관 감독 제도가 예상하지 못한 형태의 위험을 보여 준 사례로 평가된다. 감독 제도는 정부가 정보기관을 남용하는 경우를 막도록 설계되었지, 정보기관이 정부를 상대로 움직이는 경우를 상정하지 않았다.

13. 연표 [편집]

* 1998년 4월 1일 — 국가정보국 작전본부 산하 정보환경대응실 설치
* 2004년 6월 — 법무관실 의견서 제04-17호, 국외성의 발신지 기준 채택
* 2008년 7월 1일 — 마틴 R. 해스컬 국가정보국장 취임
* 2009년 9월 1일 —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 취임
* 2010년 11월 15일 — 해스컬, 간부회의에서 "같은 전장" 발언
* 2010년 12월 — 실무 지침 개정, 「논지 일치」 기준 도입
* 2011년 3월 7일 — 과제 카드 체계 도입 (과제 11-0001)
* 2011년 9월 — 해군정보부와 「해협 정보환경 공동대응 약정」 체결
* 2012년 2월 20일 — 엘스워스 재선 출마 선언, 「정보기관 개혁 3원칙」 발표
* 2012년 3월 — 종합대응계획 12-B 수립
* 2012년 10월 9일 — 02시 14분 게시물
* 2012년 10월 12일 — 사회민주당, 벨포르 시경찰에 고발
* 2012년 10월 24일 — 벨포르 시경찰, 국가정보국과의 계약 관계 확인
* 2012년 10월 26일 — 광역수사국 방첩수사국, 사건 이관
* 2012년 11월 1일 — 광역수사국 수도권 지역본부 중간 수사 결과 발표
* 2012년 11월 4일 — 대통령 선거, 리처드 콜턴 당선
* 2012년 11월 26일 — 정보기관 선거 개입 특별수사단 구성
* 2012년 12월 3일 — 선거무효소송 제기
* 2013년 1월 15일 — 마레샬,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 증언
* 2013년 2월 27일 — 《르 마탱》, 사진 도용 피해자 콜랭 보도
* 2013년 3월 14일 — 국가정보국 본청 압수수색
* 2013년 5월 2일 — 해스컬 사임
* 2013년 5월 21일 — 해스컬 등 13명 기소
* 2013년 6월 12일 — 대법원, 선거무효소송 기각
* 2013년 6월 21일 — 《라 부아》, 「적색청소부」 피해 아동 어머니 인터뷰
* 2013년 7월 8일 — 《르 마탱》, 오를로바 일기 보도
* 2013년 9월 1일 — 콜턴 대통령 취임
* 2013년 11월 4일 — 특별수사단장 사바티에 직무 배제
* 2013년 12월 16일 — 정보환경대응실 폐지, 대외소통분석과 신설
* 2014년 1월 — 과제 원장 서버 교체
* 2014년 2월 10일 — 검찰총장 앙크틸 사임
* 2014년 3월 20일 — 해스컬 1심, 국가정보국법 위반 유죄·공직선거법 위반 무죄
* 2015년 2월 12일 — 해스컬 항소심, 징역 4년
* 2015년 6월 — 17-3호 작전
* 2015년 10월 29일 — 대법원 파기환송
* 2017년 9월 1일 — 새 정부 출범
* 2017년 10월 10일 — 정보활동 재검증 위원회 구성
* 2017년 12월 6일 — 톨루즈 원격지 백업 테이프 발견
* 2018년 6월 21일 — 해스컬 파기환송심, 징역 5년
* 2018년 11월 — 국가정보국법 개정
* 2019년 3월 28일 — 해스컬 징역 5년 확정
* 2019년 9월 — 르세르 1심, 피해 아동 모욕 부분은 공소시효 완성
* 2019년 12월 — 형사소송법 개정, 아동 대상 모욕 공소시효 특례 도입
* 2020년 4월 — 셰르바코프 징역 3년 6개월 확정

14. 주요 인물 [편집]

인물
당시 직위
역할
대통령
공작의 표적
민주공화당 후보
당선
마틴 R. 해스컬
국가정보국장
총책
빅토르 A. 셰르바코프
작전본부 부국장
설계
도미니크 L. 파레
정보환경대응실장
실행
이자벨 K. 노르드
기획반장
협력자
테오 R. 비달
전파반 계약직
게시물 작성
파트리크 J. 르세르
전파반 요원
「적색청소부」 운용
오스카 H. 룬드그렌
해군정보부 제5처장
징집병 동원
레지스 P. 오방
MIA 수도권 지역본부장
11월 1일 발표
이리나 S. 코르닐로바
MIA 디지털분석과장
분석 범위 제한
콜턴 캠프 안보정책단장
불기소
야니크 D. 브르통
대학원생
최초 공개
이네스 P. 가르니에
시민단체 대변인
피해 아동의 어머니
쥘 A. 마레샬
벨포르 시경찰 수사팀장
증언
나탈리아 V. 오를로바
해군 징집병
일기 공개
로랑 V. 사바티에
특별수사단장
직무 배제
콜턴 정부 국가정보국장
불기소
안나 F. 레비츠카야
재검증 위원회 위원장
재조사

15. 여담 [편집]

* 02시 14분 게시물을 올린 계정 「phare_belfort」의 인물 설정서상 인물은 나보레에 사는 61세 퇴역 해군 부사관이었다. 프로필 사진은 등대였다.
* 마지막 과제 카드는 선거 전날인 11월 3일 토요일 09시 30분에 발행된 12-1352다. 원문 칸은 비어 있었고, 대응 방향 칸에는 "전 계정 게시 중지. 11월 5일부터 원 업무 복귀. 개인 기록 정리."라고 적혀 있었다.
* 「번역 실적」은 사건 이후 루이나에서 누군가 시켜서 쓴 글을 가리키는 속어가 되었다. 인터넷 토론에서 상대의 글을 두고 "그거 번역 실적이지?"라고 하는 식이다.
* 과제 카드 12-1187의 원문이 된 사비에트 국제방송 논평의 필자는 2013년 방송에서 "내 논평은 루이나 정보기관이라는 가장 성실한 독자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 오를로바의 일기에 따르면, 제5처 징집병들은 과제 카드를 「숙제」라고 불렀다. 일기에는 "숙제를 다 한 사람만 전화 사용 시간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 분산 작업장 세 곳의 월 임차료는 모두 합쳐 5,400달러였다. 재검증 위원회는 공작 전체가 이 5,400달러짜리 아파트에서 무너졌다고 적었다.

16. 대중매체에서 [편집]

* 2014년 《르 마탱》의 연재 기사 「번역 실습」이 같은 해 단행본으로 나왔다. 오를로바의 일기 전문이 부록으로 실렸다.
* 2019년 RBC 다큐멘터리 「9분」은 02시 14분부터 02시 23분까지의 9분을 출발점으로 사건 전체를 재구성했다.
* 2021년 비달의 회고록 「야간조」가 출간되었다.
* 2022년 8부작 드라마 「과제 카드」가 방영되었다. 인물 이름은 모두 바뀌었으나 구성은 사건의 경과를 거의 그대로 따랐다.
* 2024년 영화 「23시 10분」은 마레샬을 모델로 한 수사관을 주인공으로 광역수사국 이관부터 11월 1일 발표까지의 일주일을 다뤘다.

17. 관련 문서 [편집]